◎ 읽은 책 제목 / 지은이
『호빗』, 톨킨
◎ 기억에 남는 문장
383p
“친애하는 빌보! 자네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군. 자네는 예전의 그 호빗이 아니라네.”
◎ 나의 독후감
으레 『호빗』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장엄한 서사시의 시작, 톨킨의 위대한 역작 같은 평가를 내리고는 한다.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봐 왔고, 나도 처음에는 『호빗』을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난쟁이와 요정이 나오고, 무려 작품의 제목을 차지한 호빗이라는 아주 미묘한 종족도 나온다. 서로 전쟁을 하고 보물을 찾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 담겨진 『호빗』은 여러모로 기독교 세계관과는 멀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한 번만 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의 귀중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호빗』은 안락함을 즐기던 골목쟁이네 빌보가 마법사 간달프와 열세 명의 난쟁이들과 함께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보물을 되찾기 위해 떠나는 모험 이야기이다. 빌보는 여정 중 일행과 헤어져 몸이 투명해지는 신비한 반지를 얻게 되고, 이후 여러 차례 위기를 모면해 난쟁이들을 돕게 된다.
용 스마우그는 호수 마을을 습격하다 바르드의 검은 화살에 맞아 죽지만, 보물을 둘러싸고 인간, 요정, 난쟁이 간의 갈등이 형성된다. 이때 고블린과 늑대 무리가 외로운 산을 공격해오자, 모든 종족은 힘을 합쳐 '다섯 군대 전투'를 벌인다. 치열한 싸움 끝에 승리를 거두지만, 난쟁이 왕 소린은 전사하게 된다. 이후 보물에 욕심이 없던 빌보는 약간의 보물만을 가지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와 평온한 삶을 되찾게 된다.
『호빗』을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물질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자는 것이다. '보물'은 『호빗』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맨 처음 난쟁이들이 여정을 떠났을 때만 하더라도 여정의 목표는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빌보의 활약으로 스마우그의 폐허에 쌓여 있는 보물을 보게 된 소린은 보물에 눈이 멀어 혼자서 '독차지하려고' 했다. 우리는 재물을 가지고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 돈을 쌓아두면 쌓아둘수록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결국 보물을 탐내던 소린은 다섯 군대 전투에서 창을 맞아 죽게 되었다. 권력과 재력을 한 번 맛보고 돌이킬 수 없게 되면 그 최후가 비참함을 소린을 통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만큼 재물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재물을 욕심내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
첫째, 우리는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소린과 바르드는 모두 용이 가지고 있던 보물을 되찾을 정당한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둘에게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바로 소린과 바르드가 보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의 차이였다.
소린은 보물을 독점하고 난쟁이 일행에게만 이를 나누어 주려고 했지만, 바르드는 전쟁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전쟁을 도운 모든 종족에게 보물을 나누어 주었다. 이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나중의 결과가 달라짐을 보여주고 있다.
스마우그만 보더라도 그렇다. 탐욕스러운 용 스마우그는 그저 보물을 쌓아두기만 했고, 소린은 보물을 나눠주지 않고 자신만이 독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오직 바르드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보물을 나눠주었다. 결국 스마우그와 소린은 죽게 되었고, 바르드는 용을 죽였다는 영광과 함께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이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장 12절)라는 말씀을 통해 생각하고 적용해볼 수 있는 교훈이다.
둘째, 우리는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이가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호빗』이라는 책의 내용 자체만 보면 어떻게 '모든 것을 공급하는 절대자'를 떠올릴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이 책에서도 절대자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조금 달라지겠지만 결국 이 책에서 관통하는 주제는 '보물'이지 '보물을 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린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를 추측할 수 있다. 처음부터 생각해보자. 난쟁이들이 여정을 시작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소린의 보물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소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산아래 왕으로 있던 시절 모아둔 재산이다.
세습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소린이 보물을 취득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소린의 보물 취득에 대한 정당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과연 그가 보물을 얻게 된 것이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재산을 축적해두지 않았더라면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걸 되찾으려는 여정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한 번 우리에게 적용해보자. 우리는 구원을 스스로 이룰 수가 없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공급자가 되신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 되신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손에 우리 삶을 맡겨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하시는 이도 가져가시는 이도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창조와 타락, 구속과 부활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키워드다. 그중 이 이야기는 구속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린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보물이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모두 아버지의 은혜 덕분인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채워주시는 것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도 우리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를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나는 모태 신앙인이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고 교회 반주로 섬기면서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정말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그럴 때마다 대답하지 못하고 언젠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만을 품어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정말 내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고 있기는 한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부모님이 나에게 하신 말이 『호빗』을 읽으며 불현듯 떠올랐다. 내가 바뀌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리 결심을 해도 부족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내가 달라지기 위해서 지금까지 나는 무슨 노력을 해왔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노력하는 것이 싫어 지금껏 움츠리고 가만히 있던 내 모습을 그제서야 직면했다.
빌보는 어째서 모험 전과 후로 인생이 달라졌는가? 나는 왜 결단한 이후 달라지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실천의 유무에 있었다. 야고보서에 나오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이 불현듯 떠올라 무서워졌다.
교회 담임 목사님이 늘 설교 시간에 드시는 예화가 있다. 피겨 선수 김연아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피겨 선수가 될 수 있었는가? 손흥민이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은 노력했다.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보다 나아지기를, 오늘의 자신보다 내일의 자신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연습했다. 그러나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깨달음이 왔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 의구심을 품어왔던 것은 전부 실천하려 하지 않고 나를 발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베풀어주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를 희생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혹시 한 번도 그러한 적이 없었다면, 나는 어째서 그렇게 이기적인 삶을 살았을까? 왜 나는 노력하려 하지 않고 변하려 하지 않았을까? 주님께서는 내가 뭘 하기를 원하실까? 나는 한참 나 자신에 대해 고민했다. 어떻게 이 책에 나오는 가상 인물보다도 못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빌보가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본받을 점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빌보도 모험을 원치 않았다. 그는 마지못해 간달프에게 반쯤 억지로 끌려나갔다. 여정 내내 집으로 가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는 모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일을 경험하고 위기를 극복했다.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거미들과 싸우기도 했고, 친구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스스로 요정 왕의 감옥에 들어가길 선택했다. 그는 큰 변화를 겪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빌보는 간달프에게 이러한 말을 듣게 되었다.
"친애하는 빌보! 자네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군. 자네는 예전의 그 호빗이 아니라네."
나는 내가 이러한 말을 듣기를 원했다. "너, 뭔가 전이랑은 달라진 것 같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바래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실천할 차례다.
주님이 나의 구주이신 것을 다시 한 번 굳게 믿고 예전의 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의 것을 쫓아가지 않고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바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만약 내가 『호빗』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를 언젠가 깨달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막연한 기대 속에 언젠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지금보다 더 후회할 것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다시 한 번 내게 이 책을 읽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