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은 책 제목 / 지은이
천로역정 / 존 번연
◎ 기억에 남는 문장
250p
‘당신들이 저곳 임금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더 얕아질 수도 있습니다.’
◎ 나의 독후감
인간 존재의 근본적 두려움과 그 본질
인간은 태생적으로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그들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라고 기록된 것처럼,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두려움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 되었다.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과 환경적 위협 앞에서 끊임없이 공포를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두려움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전도서 기자가 "사람이 영원히 갈 본향으로 가게 되어"(전 12:5)라고 표현한 것처럼, 죽음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히브리서 2장 15절은 이를 정확히 진단한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던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면서, 본래 누려야 할 영생의 축복을 잃어버린 채 죽음의 그림자 아래 살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영적 공포인 것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이 보여준 두려움들은 모든 성도가 성화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보편적 경험이다. 그가 처음 멸망의 도시를 떠날 때 느꼈던 두려움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는"(롬 1:18) 것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었다.
이는 잠언 1장 7절이 말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의 실현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지혜의 시작이다. 크리스천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한 것은 성령께서 그의 마음에 역사하여 죄를 깨닫게 하신 결과였다.
그러나 그의 여정 중에 나타난 다른 두려움들 - 절망 거인에 대한 공포, 허영의 시장에서의 불안, 어둠의 골짜기에서의 전율 - 은 사탄이 성도의 마음에 심어주는 거짓된 두려움들이었다. 이러한 두려움들 앞에서 크리스천은 때로 넘어지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일어서며 승리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도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가득했다. 물에 대한 공포는 어릴 적부터 나를 제약했던 대표적인 두려움이었다. 깊은 바다는 물론이고, 내 키보다 낮은 수영장에서조차 물에 몸의 힘을 풀지 못했다. 바닷가에서 다른 사람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동안, 나는 혼자 모래성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자습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도 사람들이 보면 우스울 만한 높이임에도, 내 눈에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계단을 오르곤 했고, 지금도 높은 계단 앞에서는 망설여진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곤고한 것들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는 바울의 고백이 개인적 경험을 통해 실감나게 다가왔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두려움과 거짓된 두려움
성경은 두려움에 대해 명확한 구분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두려움과 사탄이 심어주는 거짓된 두려움이 그것이다. 전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요"(잠 9:10)라는 말씀처럼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며, 후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는 말씀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현대의 심리학에서 두려움을 'False Evidence Appearing Real'(실제처럼 보이는 거짓 증거)의 줄임말로 설명하는 것은 성경적 진리와도 부합한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8:44)로서 성도들의 마음에 거짓된 증거들을 제시하여 불필요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한다.
이러한 세속적 두려움들의 대부분은 명확성 없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거나,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 과도하게 확대된 결과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이런 거짓된 두려움들에 굴복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딤후 1:7)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 천성 앞 죽음의 강을 건널 때 보여준 모습은 모든 성도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궁극적 목표를 제시한다. 그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마지막 적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물속으로 가라앉기도 했지만, 하나님과 천성의 실재성에 대한 확신, 그리고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영광에 대한 소망을 붙들고 마침내 승리했다.
이는 바울이 "죽음을 삼킨 것이 승리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55)라고 선포한 그 승리의 실제적 체험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의 권세가 이미 깨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조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착용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구명조끼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깊은 물로 들어갈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구명조끼를 의심하는 자는 여전히 얕은 물가에서만 발을 담그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위험과 두려움 속에서 영원한 구명조끼와 같으신 분이다. 그분에 대한 신뢰가 있는 자는 인생의 깊은 물들 - 고난과 시련, 심지어 죽음의 강까지도 - 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는 평생을 두려움의 얕은 물가에서만 맴돌며 살아간다.
시편 23편 4절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고백이 바로 이런 신뢰의 표현이다. 죽음의 골짜기조차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확신이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삶은 두려움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두려움과 잘못된 두려움을 분별하여 전자는 품고 후자는 물리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두려움은 지혜의 근본이며, 세상적이고 사탄적인 두려움들은 믿음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라는 확신을 가지고, 천성을 향해 담대히 전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용기이다. 이 용기는 인간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나온다.
크리스천이 마지막 죽음의 강을 건너며 천성에 도달한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의 순례를 마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방패요 피난처가 될 것이다.